[스크랩] 나는 가수다
나는 가수다.
2011년 7월 9일 새벽12시 33분
아파트 베란다 창문너머 어둠속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잠을 자려다가 말았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싶어서다. 뇌근육은 일생각에 찌들어 엉켜져 있다. 빗소리가 들리지만 감성은 촉촉이 젖어들지 않는다. 한참 글쓰는 재미에 빠져있을때 일에 집중하지 못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글을쓰기위해 몰두하려는 감성이나 생각들을 흩으려놓았다. 무엇보다 업무시간에 자꾸 생각을 지속하려는 것이 싫었다. 정상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왠지 도둑질하는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생각이란게 떠오르는 순간을 잡지 않으면 생동감을 잃는다.
비가 오는데도 감성은 열리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지금은 원래 잠을 자야할 시간이라 더 그렇다. 어제밤에도 잠이 부족했었다. 일이 힘에 부치는지 몸의 건강이 균형을 잃기 시작한것같다. 이럴때도 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들이 나머지의 생을 갉아먹는듯하다. 알면서도 멈추지는 못한다.
나는 가수다.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TV에서 노래프로그램을 보다가 였다. 가장 정확하게는 임재범이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고서 였다. 임재범이 나오기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제목을 보고서 생각하나가 떠올랐다.
이제 다시 진짜가 그리운 시절이 잠깐 오는가 보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김영희PD라는 사람은 시절을 읽어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보여지기 보다는 여럿이 한꺼번에 보여져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포스트모던니즘을 너무나 닮았다. 뚜렷한 하나의 진짜를 보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잘 훈련되고 다듬어진 여럿이 만들어내는 하나를 즐겼다. 그들에게 진짜란 별 의미가 없어보였다. 얼굴을 바꿔가며 쏟아내는 감성의 열정을 그저보고 즐겼다.
이런 젊은이 혹은 나이든 시절인(時節人)들에게 진짜를 보여주려했다. 오래 묵어서 이제는 잊혀져 가는 퇴물가수들을 무대앞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감히.
시대를 거슬러 보려는 시도인가 의심했었다.
김영희 PD는 국민가수 김건모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부여한것 때문에 경질됐다. 탈락자는 탈락시켜야 한다는 이시대의 냉혹성을 잠깐 잊었었다. 김건모의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살던시대의 정서로 이시기를 이해하려했던 큰 실수를 범했다.
지금(NOW)을 생중계하는 뉴스(NWES)로부터 미디어는 자라왔다. 잠깐 놀아보도록 기회를 준것 뿐이지 현실은 여전히 현재에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었다.
어쨌든 그의 시도는 좋았다.
본인이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곱명을 마이크 앞에 불러세웠다.
얘기가 길어지더라도 간단히 말하고 넘어가자.
박정현
가수들이 가장 노래잘하는 여가수로 꼽는 가수중에 하나다.
영어에는 익숙한데 한국식 발음은 서툴러서 격음을 더 세게 눌러서 노래하는 모습이 귀엽다. 가슴은 열려있고 목청은 트였으며 호흡도 충분하다. 중간음으로 한참을 내밷기만하다가 고음으로 갑자기 올라갈때도 생목소리를 유지한채 내지를수 있다. 호흡을 굳이 바꾸지 않아도 여유가 있다.
항상 한국어 가사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백지영
사연이 많은 여가수다.
살사 리듬의 2집 음반이 한참 인기를 얻을때쯤 치명적인 사생활이 노출되었었다. 이겨냈다. 빠른속도로 남미리듬을 숨쉬면서 고음과 중음을 거침없이 소리지를수 있다. 그것도 생목소리로. 호흡을 오래 뽑아내기위해 고전적인 훈련을 받은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중가수 아니던가.
본인을 좋아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몸을 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오래도록 받았다. 그러고도 가수로서 살아남았다. 그녀 만큼 몸노래의 슬픔을 잘 표현할수 있는 가수는 없다.
윤도현
Rock and Roll baby.
임재범이 붙여준 별명이다.
대중들은 진짜 슬픔을 싫어한다. 정직하고 순박한 파주청년이 배추를 던져서 부셔가며 부르는 정도의 Rock을 좋아한다. 윤도현은 그정도에 딱 맞는 Rocker다.
김범수
얼굴없는 가수였단다. 대중가수로서 이만큼 잘 훈련된 가수도 한국에선 없을듯 하다.
R&B의 호흡과 에드리브를 갖추었다. 호흡이남아서 숨이 멎을때쯤 더 크게 소리지를수 있다. 흑인의 기교를 제대로 흉내낼줄도 안다.
이소라
말하는듯하지만 음과 리듬을 정확히 읽어내고 감성을 끌어모아 노래에 쏟으내며 말하는 가수다.
처음보는 악보를 아주 정확히 볼줄안다는것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두려워 하지 않을수 없는듯 하다.
김건모
누군가가 김범수에게 세상에서 누가 노래를 제일 잘하는것 같냐고 묻자 스티비 원더라고 했다. 김건모는 스티비 원더를 너무도 닮았다. 득음을 하기위해 피를쏟았던 초년병 시절 무용담을 들려줄 만큼 장난스럽다.
짜내는듯한 생목소리를 갖고서 중음의 크기와 고음의 소리크기를 똑같이 내지를수 있는 사람이 많지않다. 그것도 기다란 문구를 노래로가 아니라 말하듯이 내지를수 있는 가수는 정말 많지않다. 흑인의 랩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음의고저없이 내지를수있다.
또 하나가 누구였더라.
나는 가수다.
누가 진짜 가수일까.
다른나라는 말고 한국에선 누가 진짜 가수일까.
나는 ...
불교에서는 나(我)라는 말을 안쓰고싶어한다.
나(EGO)는 사실 뚜렷하게 구분짓고 싶어하는 서양식 언어습관에서 나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지나가는(如來) 에 익숙한 동양적 문화권에서는 나(我)를 형성하는 뚜렷한 성격(性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편이다.
군자가 지켜야할 중용(中庸)의 도 중에 중(中)은 사실 이도저도 아닌 가운데를 의미한다.
왜 하필 이 시절에 김영희 PD는, 나는 이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내걸었을까.
철학적 논제(論題)에서 ‘나는 무엇이다’ 라고하는 말만큼 명확한 문구는 없다. 적어도 나(我)를 형성시킨 인격(人格)이 그렇다는데 누가 토를 달수있을까. 언어적 의미로서 영어에서도 ‘I am ’이 지칭하는 문구만큼 명확한 문구가 있을까. 알수있는 인간으로서 최초의 인간인 ‘나 ( I )’ 는 ‘이다’ 라는데 이보다 우선적인 언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이외에 대상(對象)으로서의 명사 대명사 형용사 들이 지칭하는것들은 사실 모호한 것들이다.
김영희 PD는 당돌하게 ‘나는’ 을 내세웠다.
나는 가수란다.
가수를 나의 본질로 삼는사람들이란다.
다시말해 진짜가수들이란다.
언젠가 상길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재적인 가수는 송창식이라고 쓴것을 본적이 있다.
난 사실 누가 천재이고 누가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인지는 모르겠다. 송창식을 좋아하기는 한다.
난 사실 송창식처럼 소리(音)나 리듬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하여 서양의 대위법(對位法)을 빠른시일내에 터득해내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편이다. 국악의 소리와 리듬을 터득해내고 의미없는 가나다라노랫말로 노래를 불러 나를 전달할줄 알만큼 빼어난 사람보다는 훨씬더 저속한 대중가수를 좋아하는편이다.
난 사실 ‘송창식 그사람 참 뛰어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백지영의 Sad Salsa 그노래 죽이지 않냐’ 라고 말하는 분위기에 훨씬 익숙한 편이다.
누가 진짜 가수일까.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앞에 당당히 나서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중에 누가 진짜가수 인 것으로 밝혀질까. 정말 궁금하다.
사람들은 왜 또다시 이렇게 진짜를 밝혀내기위해 관심을 기울일까. 그것도 참 궁금하다.
다수의 ‘나’ 들을 대신해서 시간과 공간적 제한이 허락하는한 나름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청중 평가단은 다양한 직업과 공평한 연령대들로 선택되었다. 초중고생들이 음악프로의 가요순위를 선점하는 이 시절에 그렇게 보여지는 것만이 진짜는 아니라고 김영희 PD는 당당히 맞섰다.
그리고 진짜 가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강호의 고수들을 불러모아서 경쟁을 시키고 탈락을 시켰다.
‘당신은 아직 뭔가 부족한것 같아요’
김건모가 탈락한것에 너무나 당혹스러워 해서 프로그램의 당초취지를 잠시 잊었다. 실은 김PD의 원래의도를 이미 떠나 있었다. 청중평가단을 대신해서 화면의 뒤에 숨어있는 ‘나’ 들이 김 PD의 나약한 심성을 가차없이 탈락시켰다.
누가 진짜인지 알고 싶어했다.
UFC를 보면서 진짜 싸움꾼이 누구 인지를 알고 싶어하는것 처럼.
나도 궁금했다.
누가 진짜 가수일까.
가수의 인생을 저마다의 절절한 사연을 갖고서 살아온 저 가수들 중에 누가 진짜 가수일까. 나는 가수라고 울음을 웃어제치는 저 사람들 중에 누가 진짜 가수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일까.
대중적인 호기심이 내 눈길을 끌었다.
김건모가 노래 끝에 빨간 맆스틱한번 발랐다고 무대에서 쫒아냈다.
김건모는 나이 40이 넘어서서도 그렇게 장난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개구진 장난이 늘 통했었다. 사람들은 그의 예상치못한 몸짓이나 말투를 보고 즐거워 했었다.
지금은 달랐다. 장난이 아닌줄을 너무 늦게 알았다. 김건모는 맆스틱 바른것을 여러번 후회했다.
백지영은 진짜 가수였다.
무시로를 부를때 그 슬픔은 진짜 슬픔이었다. 울지 않았을뿐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백지영의 인생에 어느정도만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라면 그녀가 무시로를 부를때 젖어있던 슬픔에 동조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대중으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받고 있듯이 노래로 울고 있었다. 웃고 장난치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목소리크게 웃고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등에 숨고싶어했었다. 이제는 당당히 혼자 조명을 받으며 본인의 인생을 남의노랫말에 실어 들려주고 있었다. 당당히 옷을 벗어 진짜인생을 보여주었다. 본인이 이겨내온 인생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듯 했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해도 그녀는 진짜 가수였다.
실은 임재범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싶었었다.
아니 락(ROCK)이라고 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거 같다.
락(ROCK)
대한민국에도 락커가 있다.
사실 인정하지 않고 싶었지만 임재범을 가수로 인정하는한 그는 락커였다.
락(ROCK)
음악의 여러 장르중에,그것도 대중음악(POP)의 여러 장르중에 락을 하는 가수들이 있다.
락 이라는 음악이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락음악은 세계대중의 관심을 받을만큼 진정성이 좀 모자랐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다 지나간 이야기 이지만.
락(ROCK)은 현재의 대중들에게 중심적인 관심을 끌수있는 음악은 아니다. 현재 대중음악의 주류가 아니라는 말이다.
1980년 후반에 나온 영화중에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초반 장면중에 샤론스톤이 늙은락커(Rocker)의 목을 얼음송곳으로 수없이 찔러 목의 피를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그 시대에 이미 락음악은 시대의 주류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영화의 시나리오작가 혹은 원작자는 시대를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락 음악이라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생(生)목소리로 질러대는 소리로 만들어내진 음악이다. 아름다운 악기가 되도록 훈련하는 클래식이나 곱게 다듬어진 발라드의 소리가 아니다.
인간의 육성이 꾸밈없이 내지르는 인간의 생생한(natural)소리로 만들어진 음악이 락이다. 블루스나 재즈처럼 리듬에 구속된 음악이 아니다. 이건 순전히 인간이 내지르는 일상의 소리다. 아름답게 꾸며진 노래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실존적 본래소리다. 대한민국엔 락이 없다. 락발라드만이 대중의 동조를 얻어 냈었다.
미국에서는 쇠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문명에 목이뚫려, 더 이상 소리지를수 없는 늙은육성으로 인간의 실존적순수소리가 전락되어가고 있었다. 그 즈음에 한국에서는 락 음악이 서서히 대중의 동조를 조금 얻었었다.
신중현의 ‘미인’은 락을 하는 사람들의 모태였다.
히피적인 음악에 물들어 있던 전인권의 ‘머리에 꽃을’은 아는 사람들만 안다. ‘행진’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돛배를 찾아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신대철 김도균 김태원 3대 락 기타리스트 들중에 누가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일까.
락 음악의 시끄러운 절정에서 기타가 혼자우는 소리를 아는사람들 만이 판정을 내릴 자격이 있다.
김태원은 기타로서가 아니라 노랫말과 멜로디로 락의 애잔한 슬픔을 노래했다. 신대철의 연주를 보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나..
임재범
아내의 갑상선암이 위와 간에 전이돼서 죽는줄로만 알았단다.
락음악을 하느라 정말 돈이 없었단다.
아내 와 아이에게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단다.
그때는 택시는 타본적도 없고 걸어서 다녔단다.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동시에 시킬수가 없어서 아내와 1시간을 신갱이 했었단다.
한국 락그룹의 계보를 잇지 못하고 솔로로 전향해서 달콤한 노래를 부를때는 선배나 후배로부터 배신자의 눈총을 받았단다.
락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10년을 숨어살듯 드러내지 않았던 적도 있었단다.
한국의 락음악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김종서 이승철 이 유행시킨 노래들은 락이아니라 락발라드 였다.
전인권과 이승철의 중간쯤에 임재범이 있는것 같다.
음이 높아질수록 목구멍을 크게열어 소리를 내는것이 가능할까 .
곱게 다듬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인간이 더 크게 소리지르고 싶을때
목구멍을 더 크게 열고 싶은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다.
인간의 진짜 소리다.
락은 그런의도로 만들어진 음악이었다.
임재범은 첫 번째 경쟁에서부터 일등을 했다.
‘여러분’ 이었던가.
윤항기 선배가 완성해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편곡이 필요없다고 말했었다.
온 숨을 소리속에 숨겨 다 내밷을 즈음에, 목을 한번더 꺽어서 노래를 밀어주었다.
‘너는나의------ 영원한 친구야’
‘너는 나의 기쁨이야’
‘내가 외로울때 누가 내곁에 있어주지’
‘그것은’
‘여러분’
마흔이 훨씬 넘었을까.
2011년 3월즈음에 황금시간대를 훨씬 지난 밤늦은 시간에 무대로 나와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가벼운 노래를 부르던 늙은락커.
자존심은 지워버린듯 했다.
락커로 살때는 늘 불행하고 가난하고 힘들었었다.
혼자서 대중이 좋아할 노래를 부를때는 락커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2011년 6월의 즈음에 임재범은
아내를 위해 락커의 자존심을 버린 늙은 락커는 진짜 가수일까.
자존심(我)를 다 찢어내고 노래만 부르는 락커가 진짜 가수일까.
나를 버리고 가수의 인생을 버티고 있는것이 아내때문이라면 그의 노래는 락 일까 락 발라드 일까.
소리의 크기에서 그를 압도할수있는 가수는 없었다.
잔잔한 기교나 숨고르기로는 그를 상대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만이 진정한 가수일까.
그가 보기에 애들 장난하듯이(rock and roll baby) 락을 하는 윤도현이 가수가 아닐수는 없다. 윤도현은 얼마나 꾸밈없고 늘 보아도 순수한 청년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지금 잠깐 장난처럼 다시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는듯 하다.
인간 실존의 본질적 소리로서 락 음악의 시대는 지났다.
인간 생(生)의 피울음 소리로서 락 음악의 시대도 지났다.
진짜 락 음악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내나 가족을 위하여 락 발라드 혹은 예능에 타협을 하면서 현재를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그들은 입버릇 처럼 말한다. 언제든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위해 돌아올수 있다고. 그들도 시대의 주류로서 락음악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가수다.
사람들은 철지난 음악에 왜 또다시 관심을 보일까.
누가 진짜 가수인지 왜 궁금해 할까.
김건모의 다음주자로 나선 김연우는 ‘나는가수다’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발라드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었다. 너무나 반듯하게 잘 다듬어져서 다른가수들이 인정해주는 가수였다. 임재범은 김연우의 노래를 듣고 ‘더 지를수 있는데 아끼잖아’ 라고 했다.
김연우는 발라드를 버리고 락의경계로 넘어가기위해 있는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오래도록 훈련받아온 발라드를 떨쳐내지는 못했다.
본인 입으로 이런말을 했다.
‘질곡 없이 평탄한 인생을 살아와서인지 노래에 무게가 없다고’
나는 가수다에 나온 가수들 중에 임재범만큼 무게있는 인생을 살아온 가수가 있었던가. 얼굴없이 10년을 노래불러온 김범수의 인생무게도 그리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존재가 가볍다’고.
내게 임재범의 노래는 무겁게 들린다.
대중을 향해 무릎꿇고 자존심을 버린 늙을 락커의 소리가 저음으로 내질러진 고성(高聲)으로 들린다.
아내는 이제 병이 너무좋아져서 바다 구경도 다니고 공원에 산책도 다닌단다. 전화를 받아보면 목소리에 힘이 넘쳐 난단다.
한 사람이 희생하면 여럿이 편하게 살수있다는 말을 그가 했었던가.
노래 뒤에 숨겨진 임재범의 인생노래는 진정한 락 음악 이었다.
조만간 기억속으로 사라지기는 하겠지만 인간실존의 진정한 소리중에 하나로 기억해둘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7월9일 새벽4시14분.
이제 그만 자려고 글을 줄인다.